사랑을 나누고

말씀을 배우며

복음을 전하는


신림교회

세우고 보내는 교회

말씀과 훈련

말씀은 우리의 훈련장입니다.
성도들은 말씀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받은 은혜를 세상 속 사명으로 연결합니다.

창48장 1-7절은 3가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첫째, 우리도 야곱처럼 예배 후에 축복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경건한 사람으로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집에 돌아가서 축복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둘째, 야곱이 축복할 수 있도록 이름 없는 사람이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이 되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연결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누군가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돕는 사람이 되십시오. 셋째,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순서로 축복합니다. 약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도 잘하는 사람만 세우는 공동체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도 품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강한 사람의 속도만 따라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느린 사람을 기다려 주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신림교회 #주일설교 #전준식목사

사람은 누구나 생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또 하나의 생일이 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날입니다. 중생이라고 말하거나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에게는 예수님이 주신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봄입니다. 농부는 씨를 뿌립니다. 그 씨에서 싹이 날 것이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씨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씨 안에 생명이 없다면 그 씨는 썩고 말 것 입니다. 유정란이 있습니다. 무정란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성도는 유정란과 같은 사람입니다. 생명의 사람입니다. #신림교회 #전준식목사

기근은 가나안만 무너뜨린 게 아니었습니다. 풍요롭던 애굽까지 삼켜버렸습니다. 집이 있어도, 돈이 있어도, 안전한 직장이 있어도 — 우리가 의지하는 '애굽'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요셉은 굶주린 백성에게 곡식만 준 게 아니라 **종자(씨앗)**를 주었습니다. 곡식은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지만, 종자는 내일을 다시 살게 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그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작은 기도 하나, 다시 일어설 용기 — 이것이 사람을 살립니다. "당신이 나를 살렸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 이 말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신림교회 #주일설교 #사람을살리는교회 #전준식목사

고린도후서 9장 10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씨와 양식을 함께 주신다고 말합니다. 양식은 우리가 감사함으로 누리도록 주신 것이고, 씨는 하나님 뜻을 따라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씨와 양식으로 구별하지 않고 모두 자기 양식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이유는 더 많이 누리게 하기보다 선한 일을 위해 씨를 심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을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씨로 심을 때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삶이며, 그 씨가 내일의 소망과 풍성한 열매가 됩니다. 김목희 목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미" 배가 불렀고, "이미" 부유해졌고, "이미" 왕이 되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자랑했고, 세상의 비교와 차별의 방식을 그대로 교회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바울은 묻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 중 받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고린도 성도들은 경쟁에서 뒤처진 변두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로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은혜는 흐릿해졌고, 자신들이 가진 은사를 마치 스스로 얻은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바울은 신랄하게 대조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왕이 되었군요. 우리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정처 없이 떠돕니다. 욕을 먹어도 우리는 복을 빌어줍니다." 구원은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왕 같은 영광은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때에 주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고난을 견디며 십자가를 지는 시간입니다. 산상수훈은 말합니다. "자발적으로 가진 것을 포기하여 가난을 선택한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자랑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내려놓고, 나누고,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난을 스스로 선택하고 견디면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신실하게 축복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종, 청지기의 태도입니다.

야곱이 간 곳은 고센입니다. 고센은 변두리입니다. 천대받는 땅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가증하게 여기는 땅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살게 됩니다. 성경에서 고센과 닮은 땅에서 하나님의 환상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살던 곳은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도 아니었습니다. 그발 강가였습니다. 포로수용소였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외면하던 땅이었습니다. 애굽에서 고센이 천대받는 땅이었다면, 바벨론에서 그발 강가는 희망이 끊긴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눈부신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무너진 성전이 아니라, 물이 차오르는 성전을 보여 주십니다. 그 물이 에스겔의 발목까지 차오릅니다. 무릎까지 차오릅니다. 가슴까지 차오릅니다. 그리고 그 물은 성전 동쪽 문을 통해 흘러갑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가둘 수도 없습니다. 죽은 땅을 적시고, 메마른 곳을 살리고, 생명이 끊긴 자리에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발 강의 썩은 물을 보면서 생활하던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성전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보여 주셨습니다. 소망입니다. 전준식목사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에게 주노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계명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레위기 19장 18절을 보면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이 구역 성경에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 앞에 새 계명이라는 말을 첨부했을까요? 레위기에서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가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의 범위는 유대인까지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은 옛 계명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새 계명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유대인을 넘어서는 이웃입니다. 그래서 새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레위기에 근거하면 레위인과 제사장은 이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도움을 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당시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이웃의 범주를 자신을 이방인 취급했던 사람에게까지 넓힌 것입니다. 전준식 목사

우리는 기도를 마칠 때 예수님의 이름 기도합니다, 라고 고백하고 기도를 마칩니다. 이 말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하여 책임을 지겠다고 결심하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십시오. 양과 같은 사람은 이웃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양과 같은 사람들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에게 마실 것을 주었습니다. 헐벗은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웃을 향한 연민과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준식 목사

유다는 한 가정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전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유다는 한 사람의 죄를 대신 지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유다는 공동체를 살렸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살리셨습니다. 유다는 그리스도를 비추는 그림자입니다. 그리스도는 유다가 보여준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유다가 한 가정을 살렸다면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유다는 가정을 책임을 지려고 했다면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죄를 책임지셨습니다. 여러분! 은잔을 내려놓으십시오. 그 은잔을 손에서 떨어뜨리십시오. 그리고 십자가 앞으로 걸어오십시오.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거기서 믿음이 다시 살아납니다. 전준식 목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거창한 희생이나 큰 결단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요단 강 안에 한 발을 넣는 것입니다. 헌금은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한 걸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 걸음.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한 걸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한 걸음입니다. 그 한 걸음을 내딛어 보십시오. 요단강 앞에서 여러분의 발 하나를 담그십시오. 요단이 갈라지고 하늘 문이 열립니다. 추수감사주일, 막힌 하늘이 열릴 것이고 닫힌 문이 열릴 것이고 메마른 땅에서 새 생명의 싹이 돋아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신림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준식 목사

하나님은 이 아침에 우리에게 이 냄새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낸 냄새는 십자가의 냄새입니다. 보혈의 냄새입니다. 구원의 향기입니다. 세상은 성공의 냄새를 좇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따라갑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 애굽의 궁정입니까, 바벨론의 거리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의 향수는 물립니다. 고향의 냄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냄새는 물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본향의 냄새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보낸 향품은 고향의 냄새였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늘의 냄새입니다. 이 향기를 잃지 마십시오. 이 향기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퍼져나가기를 축복합니다. 전준식 목사

야곱은 아들들에게 “애굽에서 양식을 조금 사오라” 고 말합니다. 우리도 야곱과 같습니다. 삶이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우리도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 해보겠습니다. 기도 좀 해보겠습니다. 헌신 좀 하겠습니다. 봉사 좀 하겠습니다. 믿고 싶지만 다 믿을 수 없고, 가고 싶지만 끝까지 갈 용기가 없는, 그 모순된 마음이 ‘조금’ 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조금’을 존중합니다. 그 ‘조금’으로도 일하십니다. ‘조금’을 위하여 애굽에 간 야곱의 아들들은 거기서 요셉을 만나고 야곱이 요셉을 만나는 길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조금’ 을 ‘전부’를 살리는 신앙으로 성장하게 하십니다. 전준식 목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사람을 살리고,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줍니다. 신명기 30장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너희들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두었다. 너희들은 무엇을 선택할 래?” 사무엘상 24장을 보면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살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출근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출근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살리는 사람으로 출근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출근해야 합니다. 전준식 목사

성도에게는 3일이라는 시간은 바로 고통 속에서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통해 우리를 단련하십니다. 여러분, 3일을 피하지 마십시오. 어제의 감옥이 오늘의 성전이 되고, 어제의 눈물이 내일의 부활을 부름을 믿으십시오. 십자가가 부활로 뒤집힌 것처럼,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뒤집으십니다. 옷을 보지 말고 옷 안에 있는 나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흘의 끝에서 우리를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전준식목사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팔아넘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들을, 요셉의 형제들을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야곱의 아들들로, 죄인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들을, 가해자 요셉의 형제들을 심판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결국 형들은 용서를 받습니다. 호세아의 부인 고멜을 보십시오. 배신과 음행을 거듭한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고멜을 아내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를 팔아넘기고, 누군가를 외면한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주십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전준식 목사

세상이 빵을 찾을 때 교회도 빵을 찾고 있습니다. 세상은 성공을 쫓아가자 교회도 성공하자고 설교 합니다. 세상이 돈을 추구하면, 교회도 돈 이야기를 합니다. 북한 김일성이 3대째 세습을 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도 북한처럼 세습을 합니다. 이전에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아예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영적인 암흑의 시대에 빛으로 사는 신림교회가 되기를!

양육

말씀과 사랑 안에서 자라며
믿음의 군사로 준비됩니다

선교

예배와 훈련을 통해 지역과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세워집니다.

교회 이야기

교회의 이야기를 함께 그려가며, 서로 나누고 사랑으로 전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포도나무애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안에 있지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십오장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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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의 사랑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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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갈길로 갔거늘.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장 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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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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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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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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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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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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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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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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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마태복음 3장3절 #신림교회 #묵상 #말씀 #은혜 #한종수장로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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